신용창조와 돈의 공급경로 [화폐(돈) 바로 알기 #2]
(예금통화와 신용창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중앙은행이 만든 지폐와 동전 즉 현찰과 함께, 은행이 만든 또 다른 돈도 쓴다. 카드결제, 인터넷 송금, 기업 간 자금결제 등 실제 경제활동에서는 현찰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의 계좌에 있는 돈을 많이 쓰며 이러한 돈을 예금통화라 한다.
예금통화의 규모는 2026년 한국의 경우 요구불예금 등이 포함된 협의통화(M1)가 현금통화의 5배 정도이고 정기 예·적금 등이 포함된 광의통화(M2)는 현금통화의 10배 이상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중앙은행보다 훨씬 많은 돈(예금통화)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는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 때문에 가능하다. 신용창조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본원통화(현금)를 기초로 대출과 예금을 반복해 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신용창조 과정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본원통화 100을 대출 등을 통해 공급받았다고 하자. 은행은 이 돈을 A 고객에게 대출해 준다. 고객 A는 대출받은 돈을 자신의 은행 계좌에 넣어 놓고 사업자금 등에 쓸 것이다. 필요시 일부는 현금으로 찾아 쓸 수 있다. 은행은 예금 100이 늘었기 때문에 이 예금에 대한 지급준비와 은행의 자금결제 등에 대비하여 일정 비율을 중앙은행에 예치한다.
대출받은 사람이 현찰로 찾아 쓰는 비율과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비율의 합이 10%라고 하면, 은행은 대출하면서 생긴 예금 100중 90(100x0.9)를 다시 B 고객에게 대출할 수 있다. 그러면 은행에 B 고객의 예금 90이 생기고 이중 10%는 현찰로 빠져나가거나 중앙은행에 예치하게 된다. 그러면 새로 생긴 예금 90의 90%인 81을 다시 대출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다음번에는 81의 90%인 73을 대출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73의 90%인 65를 대출하고 그만큼의 예금이 생긴다. 대출해서 생기는 예금이 “0”이 될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신용창조라 하며 신용창조 규모는 은행 밖으로 나가는 현금 유출이 적을수록, 은행이 중앙은행 지급준비 등을 위해 예치하는 돈이 적을수록 커지게 된다.
대출받은 고객이 대금 지급 등으로 예금을 사용해도 현금으로 인출되지 않으면 그 돈이 다른 사람의 예금으로 입금되기 때문에 은행의 전체 예금은 변화가 없다. 은행은 여전히 같은 규모의 대출을 할 수 있다. 만약 상대방의 거래은행이 다른 경우 한 은행에서는 예금이 감소하지만 상대방 거래은행의 예금은 증가한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있어 여러 은행을 한 덩어리(은행권)로 보면 은행 간의 예금계좌에서 움직이는 자금은 은행권 전체의 대출 능력에는 변화를 주지 않는다. 은행은 이렇게 대출로부터 생기는 예금이 없어질 때까지 대출을 계속할 수 있다.
은행의 이러한 신용창조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은행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할 수 있고 은행의 예금계좌가 기업이나 개인 등 경제주체의 일상적 결제계좌로 쓰이기 때문이다. 즉 은행이 예금과 대출, 지급결제의 세 가지 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신용창조가 가능하다. 이 세 가지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느냐 여부가 은행과 다른 종류의 금융기관이 구별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신협과 새마을금고, 상호저축은행의 예금과 대출업무는 은행과 비슷하게 수행하지만 신협 등에 있는 계좌가 기업과 개인의 일상적인 결제계좌로 쓰이지는 못한다. 신협 등에서 대출받은 돈을 은행계좌에 이체하여 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협 등의 신용창조 능력은 은행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우체국의 경우 예금 기능은 충분하지만 지급결제 기능이 떨어지고 대출은 못하기 때문에 신용창조 능력은 아주 낮다. 우체국은 받은 예금을 채권이나 주식 등에 투자하기 때문에 투자한 돈이 우체국 예금으로 바로 환류 되지는 못한다. 환류는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용창조가 매우 어렵다. 증권회사와 보험사 등도 우체국과 비슷하다.
신용창조와 관련하여 음모론 또는 결정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흥미 있는 논리가 있다. 신용창조는 은행의 대출을 통해 예금통화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만들어진 예금통화는 대출 원금뿐이라는 것이다. 대출받은 사람(차입자)은 만기 시 대출의 원금에 이자를 더해서 상환해야 하는데, 이자에 해당하는 돈은 신용창조 과정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개별 차입자는 다른 사람의 대출 원금으로 만들어진 돈으로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지만 이는 경제 전체로 봤을 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들어지지 못한 이자분까지 은행에 상환하다 보면 경제 전체에 돈이 부족하여 언젠간 차입자들은 대거 도산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현 통화금융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으로 금융위기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논리적으로 보이고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복잡한 통화공급 과정을 신용창조만 강조해 너무 단순화한 것으로 금융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의 이론이다. 또한 이자를 단순히 화폐 현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이자는 실물적 성격도 강하고 화폐와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이를 하나하나 짚어볼 생각이다.
(통화공급 경로)
먼저 통화공급이 크게 4가지 경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앞의 이자를 지급할 돈이 없다는 주장이 너무 단선적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즉 대출을 통한 신용창조는 은행을 통해 돈이 만들어지는 방법 즉 통화가 공급되는 여러 경로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은행의 통화공급은 전통적으로 민간부문, 정부부문, 해외부문, 기타부문의 4가지 경로로 나누어진다.
첫째, 민간부문은 은행이 개인과 기업에 대한 대출 등을 통해 통화를 공급하는 경로이다. 통화공급 과정에서 앞에서 설명한 신용창조가 주로 작동하는 경로이다. 민간부문은 은행 통화공급의 1차 대상이며, 신용창조 이외에도 은행은 지급보증 신용평가 등을 통해 개인과 기업의 자금 융통을 지원한다.
둘째, 정부부문은 정부가 은행을 통해 공무원 봉급을 지급하거나 정부 공사대금 등을 지급하면 통화가 늘어난다. 반대로 기업이나 개인이 세금을 내거나 벌금 등을 정부에 내면 통화가 줄어든다. 정부로부터 돈을 받은 기업이나 개인은 그 돈으로 은행 대출을 상환할 수도 있다. 은행은 정부에서 나온 돈 때문에 늘어난 예금을 기초로 신용창조를 할 수 있다. 반면 기업이나 개인은 보유한 예금통화로 세금을 내게 되면 낸 세금만큼 은행의 예금은 줄고 신용창조 능력도 감소한다. 정부부문만을 더 추가해도 이처럼 신용창조 과정은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셋째는 보다 복잡한 해외부문이다. 현대의 국민경제는 개방화, 국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부문이 중요한 통화공급 경로이고 돈의 양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기업이 수출대금을 받는 것, 개인이 해외로부터 송금을 받는 것, 주식이나 채권 등에 대한 외국인투자자금이 들어오는 것 등은 국내의 통화공급을 늘린다. 반대로 수입대금 지급, 유학경비 등 송금, 해외투자 등이 발생하면 통화공급이 감소한다. 이런 관계를 미국의 사례로 좀 더 깊이 살펴보자. 미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경상수지 적자국이다. 이 경우 미국에서는 해외부문의 통화감소 요인이지만, 한국 중국 일본 등이 미국의 금융자산에 투자하면 통화가 증가한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한국 중국 일본의 외화자산 보유액 증가로 이어져 이들 국가에서 1차 유동성 증가가 나타난다. 이어 이들 국가가 늘어난 외화자산으로 미국의 금융자산에 투자하면, 미국도 경상수지 적자로 감소한 유동성이 증가한다. 물론 한국 중국 일본 등은 외화자산 감소로 유동성이 줄어든다. 이것이 국제무역 불균형이 세계 유동성의 변화로 이어지는 복잡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해외부문을 통한 통화공급은 민간부분이나 정부부문보다 훨씬 복잡하다. 거래에 달러 등 외환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출업자가 수출대금을 받아 수입대금의 지급 등을 위해 외화예금으로 갖고 있으면 신용창조 효과가 떨어진다. 한국에서 외화대출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은행들의 국제금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원화로 바꾸어 자사의 원화대출을 갚으면 은행의 원화부문 신용창조능력은 감소한다. 이때 은행의 외화자산이 늘지만 한국의 은행들의 경우 외화영업이 활발하지 못해 외화부문의 신용창조 효과가 원화보다는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출업자가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어 국내 하청업자에 지급하면 국내 하청업자의 예금이 늘면서 신용창조 효과가 커진다. 해외부문은 수출의 경우만 보아도 이렇게 복잡하다. 수입대금 결제, 외화송금을 받거나 보내는 것, 은행의 해외 차입, 외국인 국내투자, 내국인 해외투자 등을 같이 생각하면 너무 복잡해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질 않는다.
넷째, 통화공급 경로인 기타 부문은 민간, 정부, 해외부문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 부문으로 아주 다양하다. 은행이 직원들에게 봉급을 주는 것, 건물을 사거나 짓는 것, 전산설비를 구입하는 것, 예금이자를 지급하는 것,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 등은 통화가 기타 부문을 통해 시중에 공급되는 사례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면 직원들의 예금이 늘어나고 이 예금을 기초로 신용창조가 가능하다. 반대로 은행이 대출금의 이자를 받는 것, 각종 수수료를 받는 것, 보유자산을 매각하는 것, 자본을 늘리기 위해 증자하는 것 등은 시중에서 기타부문을 통해 돈이 회수되는 사례이다. 기타 부문의 통화공급은 신용창조 과정에서 이자를 갚을 돈이 만들어지지 않아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주장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반대 논리를 제공한다.
(은행에 이자를 낼 돈은 여러 가지이다)
은행은 대출에 대한 이자를 받아 돈의 양을 줄이기도 하지만 대출이자보다는 적지만 예금이자를 지급해 돈의 양을 늘린다. 또한 직원 급여, 건물 매입, 전산시스템 구축, 소모품 구입, 배당금 지급 등을 통해 대출이자를 낼 돈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은행 전체의 신용창조는 민간부문의 예금 대출뿐 아니라 정부, 해외, 기타 부문이 연결되어 작용하는 복합계이다. 예금과 대출이 반복되는 민간부문의 신용창조만 보고 대출이자를 낼 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금융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여기에다 은행은 신용창조를 통해 예금이 늘어난다고 계속 대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행은 BIS자기자본비율 같은 복잡한 건전성 규제가 적용되어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대출을 할 수 없다. 은행은 예금 확보와 함께 자본 확충이 이루어져야 추가적인 대출을 계속할 수 있다. 감독당국의 일차적 관심은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 확대를 규제하여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출과 이자는 돈(화폐) 보다 먼저 생겼고 실물 현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돈이 생겨나기 이전에 금융(대출)이 있었고, 화폐란 존재가 없어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았다. 이때 대출의 원리금 상환 가능성은 돈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대출을 받은 사람이 농사를 잘 짓거나 가축을 잘 길러 대출받은 것 이상으로 생산했느냐 이다. 즉 빌린 것 이상으로 생산하여야 자신이 먹고 살고, 빌린 것에 이자를 더해 갚을 수 있다. 현재도 이러한 기본 구조는 그대로 적용된다.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한 경우 사업이 잘되어야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대는 화폐경제이기 때문에 자금 융통이 어려우면 사업을 잘하고도 대출금 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금융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신용창조의 산물인 예금통화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어음, 회사채, 주식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계속 증가해 왔고 이것으로 은행이자를 낼 수 있다. 자금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연결되는 P2P(Peer to Peer)대출이나 크라우드 펀딩 등도 생겨났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나 신용청산 계좌와 같은 대안화폐도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과 이에 기초한 예금통화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돈의 양은 현금과 예금통화를 넘어 시중 총유동성의 개념으로 평가하고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은행에 이자를 내는 돈의 존재 유무는 은행의 복잡한 통화공급 경로와 함께 시중 총유동성의 여러 구성요소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시중 총유동성은 측정과 조절이 어렵지만 분명 존재하고 기업이나 개인의 자금 사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총유동성은 흐릿하고, 정확한 규모를 측정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돈과 인생살이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명확히 알지 못하며 쫓는 것이 돈이고,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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